마츠라 사료관, 일본 외교무역을 가장 먼저 성공시킨 영주
히로도의 영주 마츠라 타카노부의 저택을 사료관으로 개장하여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1587년 6월 19일 발령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크리스천 금제의정서 원본이 전시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기독교를 믿었던 자들을 처형하는 방법들이 상세하게 그림으로 그려져 전시되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잔인함이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이런 참혹한 처형과 고문, 핍박을 당하면서 신앙을 지켜 나갔던 일본 기독교인들이 있었던 것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250년간의 기독교를 엄청나게 탄압을 하고 기독교인이 생길지 모른다는 이유로 다섯 사람에게 한 사람씩 감시하도록 만들어서 이제 일본에는 기독교인들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생각하며 핍박이 너무나 심할 당시 감시를 피하기 위해 위장술로 자신의 신앙을 완전히 감추어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1845년 미국이 일본에게 개방을 요구해서 협정을 맺자 250년 간 숨어서 기독교를 믿던 약 7대를 걸친 위장했던 신자들이 나타나서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처럼 신앙을 지켜왔던 일본 기독교가 있었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마츠라 사료관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오래된 저택에서 느껴지는 모습이 그 당시 영주의 삶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었고 오랫동안 보존 되어 온 유물들과 잔인한 고문 그림을 볼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잔인한 고문 장면이 있으므로 심신이 약한 어린자녀와 임산부 기타분들
사진과 글을 보지 말고 넘어 가시길 바랍니다.
























※잔인한 고문 장면이 있으므로 심신이 약한 어린자녀와 임산부 기타분들
사진과 글을 보지 말고 넘어 가시길 바랍니다.

잔인한 처형 방법을 그림으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구치노츠고문으로 두 손과 두발을 함께 나무에 매달고 등에 무거운 돌을 올려놓아 고통을 주거나 팽이를 돌리듯 돌려서
코피가 터지게 하여 기절하면 다시 깨워 반복하여 고문하였습니다.

화형으로 십자가나 기둥에 매달고 불을 피워 연기와 불로 서서히 익혀서 죽이는 고문이었습니다.

수족, 코, 귀, 입, 손가락, 발가락을 베어 자르는 고문

참수형 목을 베어 죽이는 처형법

아나츠리고문방법으로 거꾸로 구덩이 속에 매달아 놓는 고문으로 곡식 포대로 꽁꽁 묶어 피가 머리로 몰려 쉽게 죽지 않고 구덩이에 머리를 넣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고문 방법이었습니다.














사료관 전시 후 기념품 판매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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